물드는 것과 용납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물드는 것은
악한 것에 끌려가는 것을 의미하며,
용납하는 것은
선과 악을 모두 받아들이면서도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과 악을 모두 용납한다고 해서
악에 물들어서 살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지혜를 잘 발휘하여
선을 증장시키고
악을 점차 줄여나가면서
파라미타( 온갖 분별이 끊겨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지혜의 완성 )와 바라밀(진리)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관점을
존중하고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경험과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실수나
타인의 실수에 대해 지나치게
자책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조금은 관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다음번에는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우리의 삶도 변화합니다.
용납하는 자세는
새로운 상황이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찾아내며 성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않습니다.
자신이나 타인의
장점과 단점을 인정하고,
장점이 때로는 단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때로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지나치게 장, 단점에 치중해서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며,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기르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선한 행동을 증진시키고
악한 행동을 자제하는 것,
다양한 지식과 교양을 습득하고
지속적으로 자기 계발을 추구하는 것,
안정된 마음과 몸을 유지하면서
스트레스와 감정의 조절,
적절한 휴식과 명상 등을 통해
멘탈을 관리하고 자기를 돌보는 것,
이를 통해 자신의 인지력과 판단력을 향상하며, 올바른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월호 스님의 육조단경 강의 〈문 안의 수행 문 밖의 수행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질러 흐릅니다.
섬진강이 "너는 전라도 물이니까 안 받아주고, 너는 경상도 물이니까 받아주겠다." 고 하지 않습니다.
그걸 다 받아서
그대로 섬진강 물이 됩니다.
섬진강 물이 흘러 내려가면
남해가 되는데
남해 바다도 마찬가지죠.
이것과 마찬가지로
자성이라는 것은
선과 악을 모두 다 받아들입니다.
흔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고
말하지만, 이 세상에는 있을 수 없는 일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도 없습니다.
다 있을 만하니까,
벌어질 만하니까 벌어지는 겁니다.
선과 악을 다 용납하듯이
자성, 본마음 참나에 입각해서
사는 사람은 일단 모든 것을 다 용납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의
마하, 크다는 것은
상대적인 크고 작음의 큼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용납해 주는 큼입니다.
하지만
선이니 악이니 다 용납하니까
악에 물들어서 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용납하는 것과 물드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지혜, 반야입니다.
지혜를 잘 써서
선은 증장시키고
악은 점차 줄여나감으로써
저 언덕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이
파라미타, 바라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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